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센추리온 전차 (문단 편집) == 개발 == 센추리온 전차의 개발은 [[제2차 세계 대전]]이 진행중이던 1943년 10월에 본격적으로 시작했다.[* Simon Dunstan. Centurion Universal Tank 1943–2003] A41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을 당시 처음 요구된 물건은 연합국의 전차들에게 위협이 되었던 [[나치 독일]]의 [[6호 전차 티거]]와 [[5호 전차 판터]]를 정면에서 상대할 수 있고, 판터와 비슷한 체급에 비슷한 성능을 발휘하고, 전면부가 [[8,8cm FlaK]]이나 [[PaK 43]]등의 88mm 대전차포를 방어하면서 어느정도의 기동력을 유지한 중(重) 순항전차였다. [[https://tanks-encyclopedia.com/coldwar/uk/fv-4200_centurion/|#]] 개발이 시작될 당시에는 명목 상으로는 중(重)[[순항전차]] 계획이었지만, 다른 순항전차와는 달리 높은 기동성을 요구하지는 않았다. 초기 설계에서 [[코멧 전차]] 수준의 선회력과 어느 정도의 순발력만 요구했다. 동시에 방호력에서는 독일군의 8,8cm 포를 방어할 수 있도록 당대의 [[보병전차]]와 동급 이상의 장갑이 요구되었다. 주무장도 티거와 판터를 정면에서 한방에 격파하기 위해 당시 영국의 최강의 대전차포였던 [[17파운더]]를 쓰기로 정해졌다. 이로서 점점 계획 명칭과는 달리 순항전차와 보병전차가 통합된 영국식 [[주력 전차]], 즉 유니버설 탱크의 요소를 갖추게 되었다. 때문에 센추리온은 최후의 순항전차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여러 면에서 이전 까지의 순항전차와는 성능이나 개발 계통이 완전히 달랐다. 일단 대전 중 순항전차들은 극초기형을 제외하면 [[크리스티 현가장치]]를 사용한데 비해 센추리온은 개발 당시부터 [[홀스트만 현가장치]]를 사용했다.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대전 당시 영국군의 보병전차가 대전차전을 중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.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, 영국군의 보병전차는 보병에 대한 직접 지원보다 보병의 돌파에 대응해서 출격한 적 기갑부대와의 교전을 중시했다. 초기 [[마틸다 전차]]와 같은 초기형 영국 보병전차가 보병이나 겨우 따라갈 기동성에 정작 보병 화력지원에 부적합한 소구경 주포로 무장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. 거기에 더해 주포 교체 전까지는 적 보병들이나 대전차포 등을 제압할 고폭탄도 없어 대전차용 철갑탄만을 사용했다고 한다. 물론 업건 이후로는 고폭탄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.[* 일례로 OQF 2파운더 전차포는 1942년에야 제식으로 고폭탄이 보급 되었는데 이 시점에서 OQF 2파운더 포는 이미 대전차전에 쓸모가 없어서 [[리틀존 어댑터]]라고 불리는 일종의 구경감소포 효과를 내는 후미부착물을 달고 전투를 수행하고 있었다. 그런데 이 부착물을 장착하면 고폭탄 사용이 불가능했다. 고폭탄이 구경이 감소된 포신을 지나가면 눌려서 내부에서 폭발해버리기 때문이다.] 때문에 이 시기부터 영국군에서는 [[순항전차]]와 [[보병전차]]의 이원화 운용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보병전차와 순항전차의 통합형인 Universal Tank가 진지하게 고려되었으며, 그 결과물이 바로 센추리온이다. 센추리온의 차체는 [[코멧 전차]]의 차체를 기반으로 늘려서 설계되었으며, 정비성을 높이기 위해서 [[홀스트만 현가장치]]를 장착하고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전면부 형상을 [[경사장갑]]으로 바꾸는 수정을 거치면서 완성되었다. 개발 초기에는 무게가 40톤으로 제한되었지만 방어력 향상을 위해 45톤으로 제한이 늘어났으며, 전면장갑의 두께도 개발 초기에는 57mm로 제안되었지만 너무 얇다고 판단되어선지 76mm(약 3인치)로 늘어났다. 엔진은 이전의 [[크롬웰 전차]]와 [[코멧 전차]]를 이어서 [[롤스로이스 멀린]] 기반의 [[롤스로이스 미티어]] V12 엔진이 탑재되는걸로 결정되었다. 또한 이때부터 센추리온 Mk 2와 이후 양식들에 탑재된 새로운 주조식 포탑이 설계되고 있었다.[* Simon Dunstan. Centurion Universal Tank 1943–2003 (New Vanguard)] 첫 목업은 1944년 5월에 제작되었다고 하며, 이때 각기 다른 무장들로 조합된 20대의 차량이 주문되었다. 이때 주문된 20대의 시제차량들의 사양은 각각 다음과 같다. * 1번~10번 차량: 17파운더+20mm 기관포에 포탑 후방 Besa 장착. * 11~15번 차량: 17파운더+20mm 기관포 장착. 포탑 후방에 Besa 대신 탈출용 해치 탑재. * 16~18번 차량: 77mm 17파운더 HV+Besa(20mm 대신) 2정[* 1정은 포탑 전면에, 1정은 포탑 후면에] 탑재. * 19~20번 차량: 77mm 17파운더 HV+Besa 2정[* 1정은 포탑 전면에, 1정은 차체 전면에. 다만 차체에 기관총이 달린 사양은 계획만 되었던건지 양산될때는 다른 양식들처럼 차체 기관총 없이 만들어졌다.] 마지막 5대(16~20번 차량)는 [[코멧 전차]]에 탑재되었던 77mm 17파운더 HV[* 17파운더의 축소화 버전]로 무장했고, 변속기로는 1~15번 차량들에 계획된 Merrit-Brown [[수동변속기]] 대신에 새로 개발된 Powerflow [[자동변속기]]를 장착하였다. 이렇게 계획된 16~20번 차량들은 A41S로 명명되었다. 다만 실제로는 A41S 차량은 단 1대만이 제작되었다.(프로토타입 5번 차량) 덤으로 A41S가 테스트에서 변속기 문제를 겪으면서 결국 Powerflow 변속기는 탑재되지 않았다.[* 변속기의 기계적인 문제들도 있었고, 기존 순항전차들에 탑재된 변속기와 상당히 달라서 승차감과 조작감에도 영향을 줬던건지 승무원들 사이에서도 불평이 나왔다.]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A41P1.png|width=100%]]}}} || || '''A41 첫번째 프로토타입 차량'''[* 포탑에 1번 프로토타입을 뜻하는 PI 문구가 적혀있다.] || 1945년 1월에 차량들의 양산이 시작되어 위의 주문된 20대 중에서 16대가 생산되었고, 같은 해 봄에 6대의 차량이 실전에서의 시험을 위한 '센트리 작전'(Operation Sentry)을 위해서 [[독일]] 본토로 보내졌다.[[https://tanks-encyclopedia.com/operation-sentry-the-first-centurion-trials-1945|#]] 하지만 이미 유럽에서의 전쟁이 거의 끝나가던 시점이라 실제 전투에서 센추리온이 활약할 기회는 없었다.[* 만약 [[몰락작전]]이 시행되었다면 센추리온이 보내졌을 수 있다는 말도 있다.] 2차 대전이 끝난 후인 1945년 8월 22일에 영국군이 800대의 차량을 주문했고[* Mk 1(A41*) 100대가 생산되었을때 Mk 2(A41A)가 나오면서 800대 중 700대는 Mk 2와 Mk 3가 되었다.] 1945년 11월부터 본격적인 양산이 시작되었다. 영국군에는 Mk.1을 시작으로 1946년 2월부터 배치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